과거사

식민지 책임을 법정에 세웠고, 결국 이겼다.

요약 : 일제시기 일본 기업에 의한 강제연행·강제노동의 책임을 최초로 묻고, 최초로 승소했다.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판결

일제 강점기에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되어 강제 노동을 한 피해자 6명이 1995. 12. 11. 일본 히로시마 재판소에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1996. 8.경에는 추가로 40명의 피해자가 같은 법원에 제소하였으나 이들은 1999. 3. 25. 1심에서 패소하였다.

일본 소송 1심 패소 후 피해자들은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문제를 검토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이 주권면제(Sovereign immunity)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어서 일본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던 피해자 중 5명과 새로운 피해자 1명 등 6명의 피해자들이 2000. 5. 1. 부산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만을 피고로 하여 강제노동에 대한 손해배상과 미불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당시 미쓰비시중공업의 연락사무소가 부산에 있어서 부산에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한국 피해자들 중 일본제철에 근무하였던 피해자 2명이 1997. 12. 24. 일본의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원고들은 2003. 10. 9.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하였다. 이들 2명을 포함하여 일본제철에서 강제노동을 한 피해자 5명이 2005년 2월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일본제철에 대하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제소 당시 이미 일본 재판은 패소 확정된 상태였으며, 한국에 일본제철의 사무소가 없어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소하였다.

피해자들의 기대와 달리 두 소송 모두 1심과 2심에서 패소하였다.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우는 소멸시효 도과로, 일본제철의 경우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패소 판결을 한국에서도 승인할 수 있고 1945년 이후의 신일본제철이 1945년 해방 이전의 일본제철과는 별개의 회사여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2. 5. 24. 두 재판 모두 원심을 파기하여 환송하는 판결을 하였다. 그 이유는 일본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어서우리나라에서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구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은 그 실질에 있어서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여 법적으로는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따라 두 소송은 2013. 7.경 파기환송심에서 모두 승소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본 기업들이 상고한 재판을 5년을 훌쩍 넘겨 2018. 10. 30.과 같은 해 11. 29. 원고들에 대한 최종 승소 판결을 하였다.

미쓰비시중공업은 6명의 원고가, 일본제철은 5명의 원고가 제소하였으나 1심 패소 후 각 소송에서 원고 한 분씩이 항소를 포기하여 최종 승소한 원고분들은 모두 9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들을 수 있었던 원고는 단 한 분에 불과하였다. 나머지 원고들은 일본 소송을 포함하여 20년도 더 걸린 소송에서 모두 돌아가셨다.

1999년 한국에서의 소송 가능성을 검토할 때 길게 잡아 10년 안에는 끝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재판이 너무나도 먼 길을 돌고 돌아 결론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하급심에서는 패소가 거듭되었지만 결국 2012년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냈고,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서 원고들의 승소판결이 확정되었다. 일제시기 노무자 강제동원 사건 최초의 소송 제기, 그리고 최초의 승소판결이 선고되는 과정에 법무법인 해마루가 오랜 시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