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
아파트 세탁실 문틀을 설계도면상 유효폭(710mm)에 맞춰 두께 40mm로 설계하였으나, 시공사가 해당 두께 제품이 대량 생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설계사·발주자와의 구체적 합의 없이 임의로 두께 55mm 제품으로 시공하여 세탁실 유효폭이 680mm로 좁아진 사안. 발주자가 시공사에게는 하자보수 책임을, 설계사에게는 예비적으로 설계상 과실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는데, 설계사를 대리하여 시공사의 임의 시공 경위를 입증함으로써 주위적 청구(시공상 과실)만 인정되고 설계사에 대한 예비적 청구는 기각·확정된 사례.
수행변호사
사안의 개요
본 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가합584351)에서는 아파트를 설계한 설계회사를 대리하였다. 이 사건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사업 시행이 지연됨에 따라 최초 설계 시점으로부터 약 6년이 경과한 시점에 실시설계가 진행된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설계사무실은 최초 설계 및 실시설계 당시 생산되는 세탁기의 폭이 700mm를 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세탁실 문의 유효폭을 710mm로 설계하였고,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문틀 두께를 40mm로 설계하였다. 당시 설계사무실이 검토한 바에 따르면 두께 40mm의 문틀 제품이 일부 생산되고 있었다.
그런데 시공사는 시공 단계에서 문틀 생산업체에 확인한 결과 두께 40mm 제품이 일반적으로 대량 생산되지 않고, 대량 생산되는 제품의 두께는 55mm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시공사는 설계사무실에 자문을 구하거나 설계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두께 55mm 제품으로 시공하였다.
이후 2020년경 입주 과정에서 세탁실 유효폭이 설계상 710mm가 아닌 680mm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당시 생산되는 세탁기가 반입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발주자는 문틀 교체 또는 손해배상 방식으로 하자를 보수한 후, 시공사에게는 하자보수 책임을, 설계사에게는 예비적으로 설계상 과실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쟁점 및 주장
이 사건의 쟁점은 세탁실 유효폭 축소의 원인이 설계상 과실에 있는지, 아니면 시공사의 임의 시공에 있는지였다.
설계사무실을 대리하여, ① 설계 자체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제공한 설계기준에 부합하게 이루어졌다는 점, ② 시공사가 설계사와 합의하거나 발주자와 구체적으로 협의하지 않고 임의로 시공하였다는 점, ③ 특히 두께 40mm 제품이 대량 생산 제품은 아니었지만 이후 하자보수 과정에서 해당 규격 제품을 특별 주문하여 설치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애초에 설계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고 이 사건은 설계상 과실이 아니라 시공상 과실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였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주위적 청구인 시공상 과실을 인정하면서, 예비적 청구인 설계상 과실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고 이를 기각하였다. 판결 이유에서 법원은 시공사가 발주자와 설계변경에 관한 협의를 거치기는 하였으나, 실무자가 변경 시공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문서화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원고의 시공사에 대한 청구를 인용하였다. 원고가 설계사무실에 대한 청구 기각 부분에 대하여 항소하지 않음에 따라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실무적 시사점
발주자나 설계사무실을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시공사가 설계도면에 명시된 자재와 다르게 저렴하거나 구하기 쉬운 자재로 설계자·발주자의 구체적 동의 없이 임의로 시공하는 사례를 의외로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최근과 같이 건설자재비가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시공사가 공사를 포기하거나 대체 자재로 임의 시공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임의 시공은 필연적으로 하자 분쟁 및 소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공사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시공사는 설계변경 절차의 번거로움이나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절차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으나, 자재 수급 상황에 따라 설계와 다른 시공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계약금액 조정 절차 및 설계변경 절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 사건에서 확인되듯, 설계와 다른 시공을 하게 될 경우에는 그 변경 내용과 사유, 발주자·설계자의 동의 여부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합의서를 반드시 문서화해 두어야 한다. 구두 협의나 묵시적 양해만으로는 추후 분쟁 발생 시 시공사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